[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2000년대 초 스타벅스라는 커피전문점이 한국 땅에서 하나둘씩 생겨날 즈음에 맞춰 탄생한 신조어가 있다. 바로 ‘된장녀’다. 허영심으로 가득 찬 여성이란 뜻으로 특히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마시는 여성이 그 저격 대상이 됐다. 밥값보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스타벅스 커피는 ‘된장녀 사치품’이라는 딱지가 붙게 됐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는 이유로 다수의 여성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현재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곳곳에는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고층 건물 밀집 지역에서는 점심시간만 되면 각양각색의 로고가 찍힌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식후 아메리카노 한 잔은 이제 평범한 일상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치품’으로 시작된 프랜차이즈 커피 열풍이 이제는 또 다른 곳으로 번지고 있다. 커피라는 마시는 제품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씹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디저트 제품에도 소비자들이 손을 대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 탓에 국내 유통업체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런 업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것이 고가 디저트다. 소비자들은 현재 이상하리만큼 고가 디저트에 꽁꽁 걸어잠궜던 지갑을 열고 있다. 덕분에 국내 디저트 시장은 최근 몇년 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백화점업계는 너도나도 귀한 디저트 브랜드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


◆ 내?만족을 위해 만원짜리 몇 장 쯤이야


“말도 마세요. 그냥 팔리는 정도가 아니라 날개돋힌 듯 팔립니다. 저녁때가 되면 거의 모든 품목이 동이 나기 때문에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는 고객도 꽤 목격했습니다. 디저트를 찾는 주 연령층이 주로 젊은 분들이 많긴 하지만 요즘은 나이드신 분들도 꽤 보입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식품관 직원 A씨)


“마카롱이라는 디저트가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닌데도 많은 분들이 사가는 것을 보고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요즘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이들 찾으세요”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 지하식품관 직원 B씨)


최근 백화점의 지상과 지하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의류·가전 매장이 위치한 지상층은 휑한 반면 지하 1층 식품관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하 매장만 잠깐 둘러보면 불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식품관 중에서도 유난히 사람들이 몰려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고가의 디저트 브랜드 매장이다. 사람들은 일단 고가 디저트의 화려한 색과 모양이 일단 한번 놀라고 가격을 물어본 후 두 번 놀란다. 몇몇은 비싼 가격에 발길을 돌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디저트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3년 전 부터다. 각 업체마다 고급디저트 시장 전략이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최신 시장 트렌드에 맞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특히 고급디저트 시장에 가장 활발한 진출을 보이고 있는 현대백화점의 경우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백화점 디저트 시장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대표주자는 일본 롤케이크 브랜드 ‘몽슈슈’다.


고가 디저트의 간판격인 몽슈슈는 조그마한 롤케이크 하나가 1만8000원을 호가하지만 입점 초기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3년 8월에 현대백화점 압구점 본점에 최초 입점한 몽슈슈 도지마롤은 작은 식품 매장 하나가 월평균 3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도지마롤이 국내에 소개된 뒤로 롤케이크 열풍이 불었고 고급 디저트 시장의 팽창을 부채질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고가 디저트 선호는 오히려 해외 본사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홍콩 마약쿠키라 불리는 ‘제니베이커리’는 홍콩 현지에서도 구매를 위해 평균 1~2시간 줄을 서야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이 지난해 국내에서 첫 판매가 이뤄진 당시 30분 만에 완판이 됐고 추가 1만 세트 물량을 더 풀기도 했다. 이에 제니베이커리 홍콩 본사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소비자들이 고가 디저트에 너도나도 지갑을 열고 있는 가운데 백화점은 아주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수익을 내는 효자 상품군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의 디저트 상품군 성장률은 2012년 30%, 2013년 23%, 지난해 29%로 해마다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2013년에 비해 지난해 디저트 판매율이 17.2% 늘어났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현재 디저트 상품군의 매출액이 조리식품 매출액을 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2008년 디저트 상품군 매출은 400억원이었지만 지난해 900억원 이상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또 최근 디저트 매출 성장률도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aT유통연구소가 내놓은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지난 해 기준 3000억원 수준으로 아직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 비하면 성장 초입 단계다. 국내 디저트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최근 사람들은 고급 디저트에 열광하는 것일까?


평소 마카롱을 즐겨먹는다는 김모(26·여)씨는?“디저트는 고가라도 해봤자 몇 만원 선인데 의류나 가전제품은 몇 십만원에서 몇 백만원을 호가한다”며?“이같은 큰 사치를 누릴 여유는 없으니 달콤한 디저트같은 작은 사치를 누림으로써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누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커피를 마실 때 꼭 케이크 한 조각을 같이 구입한다는 이모(25·여)씨도?“커피와 케이크를 같이 살 경우 밥값보다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이 것도 하나의 취미라고 생각한다”며?“최근 고가 디저트 열풍은 그 순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취미로 자리잡고 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행동학 전문가인 에드가 챔버스 미국 캔자스주립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디저트류는 그 자체로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지만 의류 등의 제품군 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품목”이라며 “백화점에서 고가의 제품을 살 수 없을 때 그 대신 맛있는 디저트를 구입하는 것은 일종의 교환 행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고급 디저트 열풍은 반짝 효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보상심리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선물을 하는?‘셀프기프팅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셀프기프팅족의 증가와 고가디저트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경기침체와 높게 치솟는 물가로 인해 소비자들은 가뜩이나 얇아진 지갑을 붙들고 생각 중이다. 그들은 무엇에다 투자해야 가장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고가 디저트 열풍은 그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적은 돈으로 식품세계의 가장 사치스러운 곳을 충분히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디저트 열풍은 단순 기호의 영역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낌새를 보이고 있다. 작고 달콤한 그것들은 지친 사람들에게 먹는다는 단순 즐거움을 넘어서 위로감까지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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