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송협 편집국장] 참 어렵고 어렵다. 실타래가 꼬여 있어도 너무 심하게 꼬여 있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심하게 꼬이고만 있다.


금품을 건넸다는 이는 죽음의 문턱에서나마 그 실상을 낱낱이 밝혔건만 받은 이는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마치 죽은 이가 생떼를 쓴 셈이 됐다. 특검까지 동원된 검찰의 고강도 수사에도 아랑곳없이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표정이다. 희미하게 흘리는 입가의 미소는 내가 재수가 없어 말도 되지 않는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다는 천연덕스런 모습이다.


고인이 된 성완종 회장과는 생전에 단 한 차례도 개인적인 만남이 없었고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며 목숨까지 내놓던 재임 70일짜리 전 국무총리는 1년간 수백차례 넘는 통화 내역과 3000만원을 빼곡히 챙겨 넣은 비타500 박스 증언까지 나왔지만 자신은 억울하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촌극을 벌였다.


국무총리 취임과 함께 뿌리 깊은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던 이 단임(短任)의 총리는 자신의 첫 번째 치적(治績)이 부메랑으로 돌변해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른바 비타500 국무총리로 각인된 이완구 전 총리와 더불어 고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또 다른 인사가 있다.


법은 절대적인 원칙에서만 가능하며 법 앞에서는 오랜 친구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실천한 모래시계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홍준표 경남도지사다.


광주지역 신흥폭력조직 보스로 카지노와 슬롯머신 등 대형 오락사업에 뛰어들면서 이권을 위해서는 잔인한 살인도 마다 않던 절친 박태수(최민수 분)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 강력계 검사 우석의 실존 인물 홍준표 검사를 단박에 스타로 만든 드라마로 기억된다.


법을 수호하는데 그 어떤 성역도 거칠게 없었던 검사 홍준표는 이 드라마 한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를 발판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정치 부패에 맞섰던 원칙주의 홍준표 검사는 20년이 지난 현재 자살로 생을 마감한 중견 건설사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오롯이 법과 원칙을 지켜왔고 정계에 들어서도 당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주관을 꺾지 않았던 홍준표 도지사가 지금은 스스로 주장한 단돈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심판대에 올랐다는 사실이 말이다.


40~50대 중년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됐던 우석(박상원 분)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홍준표 도지사 자신이 이 추악한 사건에 휘말린 만큼 자괴감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설령 홍 도지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죽은 자의 마지막 항변일지라도 자신의 이름 석자가 살생부나 다름없는 뇌물 명단에 올랐다면 소신과 원칙만을 고집했던 자신을 믿고 바라봤던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 입니다”라는 말 한마디 정도 던졌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한 손으로 감히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고 성완종 회장의 리스트 속 고위급 인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은 아니라고 잡아떼기에 급급하다.


홍 도지사도 역시 마찬가지다. 증언과 증거가 명백히 나오고 있지만 자신은 결코 결백하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부인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말이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참외밭에서는 신발 끈도 고쳐 신지 말라”는 뜻으로 본인의 뜻과 다르게 남이 볼 때 참외 도둑으로 오인 받을 수 있으니 행실에 있어 더욱 조심하라는 말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백옥 같이 깨끗한 품행과 원칙을 강조한 검사 출신인 홍 도지사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변명만 늘어놓기 전에 애초 성완종 회장 리스트에 거론될 사안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지나가는 코흘리개도 이제 성완종 리스트 소리만 나오면 그 안에 지목된 인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자신의 부끄러운 언행에 대해 도대체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국민과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범죄와 몰염치적 행태는 지속된 잘못을 관행처럼 치부해버린 탓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 정사(正史)인 구당서(舊唐書)에 보면 ‘단본징원 척하탕예(端本澄源 滌瑕蕩穢)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풀이하면 “근원을 바로잡고 깨끗이 정리하고 흠결과 잘못을 없애고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최근 사극 ‘징비록’에서 부패하고 명분과 실리만 따지며 백성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권세만 챙기려는 조정의 부패 관료들을 바라보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서애(西厓) 유성룡 선생의 질책이기도 한 이 말은 ‘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접한 고위급 인사들이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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