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의 18억 무슬림 입맛 잡는다


[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식품업계는 극심한 포화상태의 내수시장에서 심각한 침체현상을 지속하고 있다.


원가절감과 감축경영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식품업계는 새로운 시장, 즉 新시장의 개척과 돌파구가 요구돼 왔고 결국 해답은 내수시장을 벗어난 해외 진출이라는 대안이 절실했다.


이미 해외시장 돌파구를 찾아 신시장 개척에 나섰던 몇몇 대기업 수준의 식품업계는 아시아와 유럽시장에 이은 전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율법의 땅’ 할람 시장을 제2의 개척지로 주목하고 나섰다.


(좌측상단)한국관광공사=제공 (우측상단)한국이슬람중앙회=제공 (좌측하단) 농심=제공 (우측하단) 대상=제공

실제로 정부도 장기간 누란지위(累卵之危)형국의 국내 기업의 신시장 모색과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순방에서 일궈댄 할랄인증 활성화에 포문을 터트리면서 중동시장 개척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정부 주도의 할람인증 활성화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식품업계는 18억 무슬림들의 입맛을 충족할 수 있는 제품 구상과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한 新이슬람 성전 초읽기에 돌입했다.


‘할랄(Halal)'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한다”는 뜻의 아랍어로 먹는 것을 포함한 무스림의 의식주 전반에 걸쳐 허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하람(Haram)'은 “금지한다”는 의미다.


◆ 까다로운 이슬람 시장…할랄인증 필수


무슬림의 수는 전 세계 18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정부가 무역투자진흥회의를 거쳐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할랄식품 시장은 2012년 기준 1조880억달러(1196조원) 규모다. 오는 2018년에는 세계 식음료 시장의 17%에 달하는 1조6260억달러(1788조원)의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슬람 시장은 규모면에서도 클 뿐만 아니라 아직 ‘블루오션’이라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이 신 먹거리사업으로 기대를 걸기 충분하다. 이 같은 매력적인 조건에 국내 업체들은 물론 다국적 기업들까지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현지 시장에 진출하려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하나 있다. 바로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자사 제품이 좋다고 해도 할랄 인증이 없다면 이슬람 시장 문턱에도 가지 못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은 할랄식품만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할랄은 식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화장품과 의약품 등 몸에 바르고 섭취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관건은 할랄 인증을 받는 것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사용이 금지된 재료부터 정해진 도축행위까지 엄격한 기준을 지켜 제조된 제품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할랄인증을 받으려면 한국의 경우 한국이슬람중앙회(KMF)에서 담당한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 이슬람 개발부(JAKIM), 미국 이슬람 식품영양협의회(IFANCA) 등 전 세계에 위치한 할랄 인증 기관에서 할랄 인증을 담당하고 있다. JAKIM 등의 경우 KMF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을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이 섭취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돼지고기다. 코란에는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유를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할랄인증을 위해서는 돼지고기를 포함, 돼지로부터 유래된 모든 원료의 사용이 금지된다. 돼지고기를 제외한 다른 육류의 섭취는 가능하지만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방법으로 도축한 고기라는 조건이 따른다.


이슬람식 도축방법은 무슬림이 기도문을 외우면서 날카로운 칼로 단숨에 동물의 목구멍을 절단해 도축하는 것을 말한다.


또 제조 과정에서 일체의 알코올을 사용할 수 없고 돼지고기에서 파생된 콜라겐이나 젤라틴 같은 물질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같은 콜라겐, 젤라틴이라도 식물에서 추출한 것은 사용 가능하다.


할랄협회에 따르면 식품업체들이 할랄 인증을 받기까지는 기관별, 제품별 특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데 상황에 따라 약 5~6개월 또는 그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또 인증 후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갱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담도 있다.


할랄인증은 식품의 원료가 되는 1차 원재료까지 조사하는 등 철저한 점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인증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는 업체도 있는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제공

◆ 식품업계, 할랄인증 훈풍…뷰티업계 ‘난공불락’


국내 식품업계에 할랄 바람이 분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식품업계에서 할랄과 이슬람 시장이라는 단어가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됐다”며 “최근 들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현 정부의 중동순방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할랄인증을 받은 국내 제품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대상과 농심, 풀무원, 아워홈, CJ제일제당 등 국내 유수의 식품업체들이 앞 다퉈 할랄식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가장 먼저 대상 청정원은 스낵김 제품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19개 품목에 대해 할랄인증을 획득했고 2011년 2월부터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할랄인증 제품 수출을 시작했다.


대상 관계자는 “중동은 식품소비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식품시장의 확대 속도도 빠른 편”이라며 “할랄식품 시장의 성장잠재력이 상당한 만큼 정부의 이번 중동 순방 결과를 계기로 할랄인증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자사의 간판제품인 할랄 신라면을 수출 중이다. 농심은 지난 2011년 부산공장에 할랄 전용 생산라인을 별도로 만들고 할랄 신라면을 출시했다. 현재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9개 이슬람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해당 이슬람 국가에 할랄 신라면의 수출이 현재까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식품업체는 기반 여건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할랄시장 진출이 비교적 원활하나 중소기업의 경우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라 판단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식품업계가 할랄인증과 관련해 분주한 반면 최근 중국 등지에서 ‘K-뷰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장품업계는 상대적으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몇몇 중소화장품 기업에서는 중동 진출을 위해 몰두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자사 측에서 이슬람 시장은 남미지역과 더불어 아직까지 시장조사를 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은 중국과 아세안(ASEAN) 시장에 역량을 더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식품업계가 해외 이슬람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물꼬’를 트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KMF 인증만으로는 안심하기 이르다는 것이다.


현지 정부에서 JAKIM 등 더 높은 수준의 인증을 받은 할랄제품만 국민들에게 사용하길 권한다면 KMF는 ‘명목뿐인’ 할랄 인증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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