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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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손지애 기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무서운 기세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첫 팬데믹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 바이러스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WHO가 이날 팬데믹을 공식 선포하지는 않았다. 지난 2월 28일 글로벌 위험도를 가장 높은 단계인 '매우 높음'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팬데믹 선포에는 주저하고 있다. 

WHO는 코로나19가 '통제'를 못할 정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 대신, "중국에서 보고된 8만 명의 확진자 가운데 70% 이상이 회복해 퇴원했다", "싱가포르나 중국 등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한 나라가 있다"는데 주목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통상 팬데믹은 국가 간 전염이 일어나고 통제를 못 할때를 일컫는다"면서 현재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규정할 정확한 기준이 없다고 강조했다. 

팬데믹을 선언하면 통상 각국이 바이러스의 '억제(containment)'에서 '완화(mitigation)'로 정책을 전환하게 된다.

억제는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진단하고 격리하며, 이들의 접촉자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전염이 확산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많이 확산해서 격리로는 방역이 불가능할 경우 휴교, 행사 연기 및 취소 등으로 확산 가능성을 줄이는데 집중하는 완화로 전환하게 된다. 

WHO는 아직까지 코로나19 발병을 '억제'하려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며, 억제책이 코로나19 대응의 주요 초점이 돼야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세계적 대유행 선포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 "이미 팬데믹"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팬데믹"이라며 WHO의 소극적인 자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일고있다.

급기야 미국 CNN 방송은 9일(현지시간) WHO보다 앞서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CNN 의학 담당 수석 기자인 산자이 굽타는 이날 '왜 CNN은 코로나19 발병 사태를 팬데믹이라고 부르는가?'라는 제하의 글에서 "많은 전염병 학자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세계가 이미 팬데믹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그는 "팬데믹 표현을 우려한 전문가도 있었으나 대부분 전 세계가 팬데믹에 들어섰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CDC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의 낸시 메소니에 국장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19가 지속적인 사람 간 전파를 일으키며 질병과 사망을 유발한다는 점,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팬데믹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또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전염병 학자는 "여러 장소에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급속히 퍼지는 것은 유행병이라는 기본적 정의에 부합한다"며 "많은 지역에서 이 바이러스가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팬데믹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타임지]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타임지]

이에 앞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서며 이전의 '사스', '메르스', '에볼라'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언급하며 "많은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팬데믹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혼란, 극단적인 여행 및 무역 제한 조치, 감염지역에 대한 특별 인종에 대한 기피 및 차별 등의 정치적 파장들을 우려해 팬데믹 선포를 주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을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WHO가 지난 2009년 '돼지독감'으로 불리는 신종플루(H1N1)에 대해 팬데믹을 선포했을 때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이 일었던 점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팬데믹으로 규정한다면 많은 국가들이 확산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WHO 사무총장 사퇴 촉구 거세

중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북미로 세계적 대유행이 현실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선언을 하지 않은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사태에 대한 지나친 중국 편향 발언으로 잦은 구설수에 올라왔다.

실제로 그는 2017년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얻으며 WHO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당시 중국은 향후 10년간 약 10조원을 WHO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WHO를 자국의 영향력에 두려는 의도로 여겨졌다. 이 때문인지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이번 코로나사태에서도 친중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1월 초 중국 춘제 이후 코로나19의 확산이 심각해지는데도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배척하다가 1월 30일에서야 세계적 확산을 경고하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WHO가 자체 조사 없이 중국이 제공하는 데이터로만 판단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2월 24일에는 WHO 중국 현지조사단이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발원지를 봉쇄해 (전 세계가)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전 세계가 (중국에) 빚을 졌다"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홍콩 아시아타임스는 지난달 14일 기사에서 "WHO는 중국 정부의 '산하기관'"이라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비상사태 선포를 지체한 것은 물론, 중국의 확진자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굽신거렸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 / 체인지닷오르그]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 / 체인지닷오르그]

미국 서명·청원 사이트인 체인지닷오르그(change.org)에 올라온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사퇴 촉구(Call for the resignation of Tedros Adhanom Ghebreyesus, WHO Director General)' 청원에는 11일 오전 11시 현재 기준 최종 서명 목표인 50만명의 목전에 앞둔 454,233명이 서명했다. 

청원에 서명한 이들이 남긴 게시글에는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에 대해 "세계를 위해 일하는 사무총장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노예", "중국의 꼭두각시", "중국에 대한 그의 편애가 전 세계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그의 주저함과 중국 정부에 대한 편향적 태도로 결국 코로나사태는 팬데믹 상황으로 악화됐다" 등 그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는 글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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