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 질 볼트 테일러)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일리포스트=정태섭 기자] 전도유망한 하버드대 뇌과학자였던 질 볼트 테일러 박사는 37세의 어느 날 극심한 두통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중증 뇌질환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테일러 박사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좌뇌 기능에 큰 손상을 입었다.

언어 중추와 운동 감각 손상으로 그저 일상이었던 옷을 갈아입는 일도 샤워를 하는 것도 대화도 힘들어졌다.   

테일러 박사는 두 개의 뇌가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우뇌는 거시적 관점에서 정보를 취합하는 반면 좌뇌는 큰 그림을 세세히 나눠 보여준다. 좌뇌는 사물을 범주에 따라 나누고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를 통해 사물을 파악하지만 우뇌는 직관으로 이미지로 파악한다.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췌)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발췌)

좌뇌가 공격받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뇌 과학자의 냉철한 눈으로 모든 과정을 면밀히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을 담백하게 책에 담았다. 뇌 속의 언어 능력이 전부 망가져 기초적인 알파벳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인지·학습·소통의 힘을 되찾기 위한 힘겨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2011년 국내에 출간된 ‘긍정의 뇌’가 올해 1월 뇌과학에 대한 열띤 관심 속에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로 재출간됐다.  

저자이자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 박사
저자 질 볼트 테일러 박사

만일 독자들이 저자가 느낀 이변을 느낀다면 서슴없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뇌의 출혈은 시간이 지날수록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골든타임을 지켰는지는 환자의 생사를 결정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로 이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책의 내용 가운데 저자가 의식을 잃어가며 절망감에 연락을 시도하는 장면은 마치 눈부신 과학 서스펜스를 보는 듯 했다. 

다행히도 동료 스티브가 전화를 받았다. 그의 말이 들렸지만 나의 뇌는 그의 말을 해석하지 못했다. “나는 질이야! 도와줘” 이렇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으르렁대는 신음 소리에 가까웠다. “으흐흐흐, 으흐 흐흐, 크으으으, 크으으으...” 언어를 만드는 왼쪽 전두엽 세포까지 손상된 것 같았다. 출혈이 계속되어 세포 조식의 손상이 심해졌고 인지력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질 볼트 테일러(중략) 

동료가 도와주러 왔을 때에는 이미 출혈이 꽤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태에서 수술을 받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오랜 재활 끝에 기적적으로 중증 뇌질환을 극복했다. 

한편 테일러 박사는 또한 재활 과정에서 수면의 막강한 치유의 힘을 재확인했다고 역설한다. 

뇌세포는 에너지를 흡수한 뒤 찌꺼기를 배출하는데, 잠자는 동안에 이른바 ‘환경미화원 세포’들이 찌꺼기를 청소해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이 찌꺼기가 뇌에 남아서 세포들의 소통을 방해합니다.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알람시계 없이 개운함을 느낄 정도로 자는 게 이상적입니다-질 볼트 테일러(중략) 

테일러는 2013년 TED 무대에서 활기찬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 책은 대수술을 받고 8년간의 재활을 거쳐 회복한 그녀가 뇌 과학자로서 병마와 싸운 과정을 담은 경이로운 회고록이자 다큐멘터리다. 또 발병 당일부터 회복까지를 시간 순으로 세세히 기록한 귀중한 실용서이기도 하다. 

각국에서 저명한 뇌과학자가 쓴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에도 이 책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일반 뇌졸중 환자라면 결코 묘사할 수없는 환자의 사고방식과 마음 속 생각까지 뇌 과학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불가사의한 뇌를 가장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와 닿는 방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전세계 독자들에게 여전히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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