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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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사제였던 그레고어 멘델(Gregor Johann Mendel)은 완두콩 실험을 통해 생물이 가진 모양과 성질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자손에게 유전되는 '유전자'는 선천적인 요소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들어 부모의 스트레스와 기억도 유전될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가이젤 의대(Geisel School of Medicine) 연구팀이 "부모가 후천적으로 얻은 경험도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새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생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게재됐다.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게재된 연구팀 논문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게재된 연구팀 논문

 
노랑 초파리는 유충에 기생하는 기생벌의 존재를 감지하면 에탄올이 포함된 먹이 주위에 알을 낳는 경향이 있다. 애벌레가 이를 먹고 자라면 기생벌에게 목숨을 뺴앗길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F0세대'에 해당하는 노랑 초파리 암컷 40마리와 수컷 10마리, 그리고 암컷 기생벌 20마리를 4일간 함께 사육했다. 동시에 대조군으로 동일한 수와 비율의 노랑 초파리를 기생벌과의 접촉 없이 사육했다.

F0세대는 에탄올 주변에 알을 낳는 비율이 전체의 94%를 차지한 반면 대조군은 이 비율이 전체의 약 20%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F0세대의 알에서 태어난 'F1세대'를 기생벌과 어떤 접촉도 없이 사육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기생벌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F1 세대의 무려 73%가 에탄올 근처에 알을 낳았다.

이 결과는 "부모인 F0세대가 경험한 기생벌의 위협을 F1 세대가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연구팀은 말했다.

가이젤 의대 연구팀 논문

다음 그래프는 세대(가로축) 별로 에탄올 주변에 낳은 알의 비율(세로축)을 나타내고 있다. 파란 막대가 기생벌을 모르는 대조군 계통이며 붉은 막대가 기생벌의 위협을 느낀 F0세대 계통이다. 대조군에서 에탄올 주변에 알을 낳는 비율은 세대를 거쳐도 40%를 넘지 않는 반면, F0세대 계통은 세대를 지날수록 감소세를 보이지만, F4세대에 이르기까지 과반 이상이 에탄올 주변에 알을 낳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이젤 의대 연구팀 논문
가이젤 의대 연구팀 논문

이 결과는 후천적으로 획득된 '산란의 에탄올 기호성' 형질이 유전된 것이라고 연구팀은 주장하고 있다 .

또 연구팀은 노랑 초파리 산란에 있어 에탄올 기호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파리 뇌의 특정 영역에서 '신경 펩타이드 F'라는 물질 발현이 억제되는 것이 하나의 요인이라고 규명했다.

논문의 수석 저자인 줄리아나 보즐러(Julianna Bozler) 교수는 실험 동기에 대해 "신경에 코드화된 행동이 세대를 넘어 계승된다고는 보지는 않지만 우리는 부모의 경험이라는 '기억'이 환경적으로 유발된 변화로 인해 계승될 가능성을 검증하고자했다"고 언급했다. 

(출처: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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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참여한 가이젤 의대 지오반니 보스코(Giovanni Bosco)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노랑 초파리의 생물학 및 후생유전학(epigenetics) 뿐 아니라 생물 유전의 기본 메커니즘도 해명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보스코 교수는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신경 펩타이드 F’와 ‘신경 펩타이드 Y’와 같은 신호 전달 기능의 보존이다. 이번 실험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을 경험한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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