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영국이 벌인 '전파의 전쟁'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영국이 벌인 '전파의 전쟁'이란?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9.05.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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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나치 독일은 영국에 폭격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독일 폭격기는 야간 공습에도 정확히 목표를 조준해 영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영국과 독일 모두 공습에 대비해 등화관제(Blackout)를 실시하고 있었고 유도 폭탄도 GPS도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야간 폭격으로 성과를 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종사들은 항공기 상단 천측창(Astrodome)의 투명한 돔으로 밤하늘의 별을 확인하고, 육분의(六分儀·sextant)라는 측량 기구에 의지해 공격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1940년 9월 영국 템즈 강 상공을 비행하는 독일 공군의 야간 전투 폭격기 'Dornier 217' (사진:노스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1940년 9월 영국 템즈 강 상공을 비행하는 독일 전투 폭격기 'Dornier 217' (사진:노스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별자리와 육분의를 이용한 야간공습의 정확도는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독일 공군은 매우 정확한 야간 공습에 연이어 성공하며 영국을 당황시켰다. 공습 표적이 된 영국 중부의 공업도시 ‘코벤트리’는 도시 중심부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독일 공군이 이처럼 야간 공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어떻게 야간 공습에 전파를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전쟁 이전부터 독일 항공업계는 안전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해왔다. 야간이나 시야 미확보 상황에서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하는 것이 조종사의 안전 보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로렌츠 빔(Lorenz beam)'이라는 착륙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개발됐다.

로렌츠 빔(Lorenz beam)(출처: 위키피디아)
로렌츠 빔(Lorenz beam)(출처: 위키피디아)

로렌츠 빔은 지상에서 항공기를 향해 2종류의 전파를 발신하는 단순한 시스템 구조를 갖고 있다. 활주로 양단에 설치한 지상 안테나에서 날고 있는 항공기를 향해 좌측은 대시(dash) 신호음 전파를, 우측은 닷(dot) 신호음 전파를 계속 송신한다.

항공기 조종사가 라디오 주파수를 사전에 정한 전파에 맞추면 2개의 전파가 겹치는 좁은 범위에서 닷과 대시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가령 닷 신호음만 들리면 항공기 진행 방향이 좌측으로 치우쳐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진로를 오른쪽으로 이동해 닷과 대시 소리가 모두 들리는 위치를 찾는다. 반대의 경우도 같은 방법으로 항공기 위치를 탐색할 수 있다.

독일은 로렌츠 시스템을 응용하면 표적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깃 상공까지 전파를 일직선으로 송신한다면 최소한 공격 대상의 상공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문제는 ‘어느 타이밍에 폭탄을 투하할 것인가’였는데 독일은 다른 신호를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조종사는 첫 번째 신호에 따라 이동하다가 다른 신호가 목표 상공에서 겹치는 지점에 폭탄을 투하한다. 2개의 신호가 목표 상공에서 교차되면 조종사는 지상이 어두워도 정확한 타이밍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이 ‘크니케바인(Knickebein)’이라고 이름붙인 이 무선항법 시스템은 나치가 보유한 유럽 전역의 거점에서 송신된 전파를 통해 정확하게 영국 표적을 가리킬 수 있었다.

크니케바인 전파 송신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크니케바인 전파 송신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은 독일이 전파를 이용해 정확한 야간 공습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영국은 즉시 독일 측의 전파를 가장한 거짓 전파를 내보내 폭격기 조종사를 속이는 방해 작전을 펼치며 독일과 전파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X-장치는 코벤트리 공습에 사용된 유도 방법으로 목표 지점으로 유도하는 하나의 전파와 교차하는 3개의 전파가 사용된다. 이들 전파는 독일의 강 이름 Rhine, Oder, Elbe로 불리며 각각 목표 30km앞, 목표 10km앞, 목표 5km를 의미했다.

야간 폭격을 위한 독일 야간 항법·목표 탐색 시스템 X-Gerät의 원리
야간 폭격을 위한 독일 야간 항법·목표 탐색 시스템 X-Gerät의 원리 (출처: 위키피디아)

이후, 시스템을 탑재한 폭격기가 추락해 X-장치의 구조가 영국에 발각되자 독일군은 새로운 폭격기 유도 방법 Y-장치(Y-Gerät)를 개발했다. 이는 하나의 전파만을 사용해 폭격기를 정확하게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Y-장치는 지상에서 폭격기를 향해 전파를 발신, 폭격기에 탑재된 트랜스폰더(Transponder)가 이를 지상에 반사하는 방식이다. 전파를 받은 기지국은 전파가 돌아오기까지의 시간과 방향을 계산해 폭격기가 어디를 날고 있는지, 목적지까지 어떻게 도착할 것인지를 산출한 후 무선 지시를 통해 목표 지점까지 유도하는 구조였다.

1940-1941년 독일 공군의 주력 폭격기 '하인켈 He-111' (사진 :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1940-1941년 독일 공군의 주력 폭격기 '하인켈 He-111' (사진 :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영국이 Y-장치를 방해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흥미롭게도 영국방송협회(BBC)가 TV 방송을 위해 알렉산드라 궁전에 건축한 전파탑이었다. 이 전파탑은 1939년부터 TV 방송을 중단했지만 다행히 Y-장치에서 사용된 주파수 대역과 BBC의 주파수 대역이 일치했다.

영국은 알렉산드라 궁전에서 독일로 거짓 반사 전파를 송신해 작전을 방해했으며, BBC 사운드 엔지니어가 독일 라디오 수신기에서 폭음 소리를 내 독일 조종사의 고막에 손상을 입히기도 했다.

결국 독일은 영국 공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구소련에 자국의 항공기 전력을 배치했다. 만약 영국이 독일군 공습에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면 전쟁의 상황은 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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