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요정의 원’이라는 의미의 ‘페어리 서클(fairy circles)’.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 공화국에 펼쳐진 나미브 사막에는 마치 물방울 같이 둥근 원들이 점점이 박힌 미스터리한 ‘페어리 서클’이 확인된다.

페어리 서클은 식물이 자생하는 지역에서 확인되는 신비한 자연현상이다. 평소엔 모래뿐인 나미브 사막도 비가 내리면 초록색 풀로 뒤덮이게 되는데 초록빛 들판에 둥근 원들이 무수히 생겨나는 것.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원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점차 커지다가 다시 점차 줄어들어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미브 사막 근처에 살고 있는 원주민 힘바족 사이에는 ‘신들의 발자취’ 혹은 ‘독(毒)의 숨을 내쉬는 용이 땅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미브 사막에서만 관찰된 현상이었으나 2014년 처음으로 호주 아웃백에서도 페어리 서클을 발견, 나미브 사막 외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과학자들은 수년 동안 페어리 서클 현상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도전했고 이에 따라 다양한 가설이 등장했다.

유력한 두 가지 가설: 흰개미설 VS. 기후설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이 현상을 둘러싼 여러 가설 가운데 특히 유력시 된 것은 ‘흰개미설’과 ‘기후설’이다.

우선 흰개미설은 부근에 서식하는 흰개미가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어 식물이 시들면서 페어리 서클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흰개미가 뿌리를 먹어버리면 식물이 빗물을 흡수할 수 없어 빗물이 토양에 스며든다. 이 경우 흰개미는 식물의 방해(물의 증발) 없이 물을 계속 공급받을 수 있어 흰개미 둥지를 중심으로 점차 외부로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어 원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기후설은 나미브 사막과 호주 아웃백 같은 연간 강수량이 극히 적은 건조지대에서 식물들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만든 패턴이라는 것. 건조한 지역에서 부족한 물을 차지하기 위해 식물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물을 공급받지 못한 식물은 시들어 그 부분에서 식물이 사라진다.

경쟁 식물이 사라진 순간 그 주변 식물은 이전보다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식물이 나지 않는 지역 주변으로 식물이 자라 페어리 서클을 만든다는 가설이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생물학자인 월터 칭컬(Walter Tschinkel) 교수는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한 2012 년 조사에서 페어리 서클의 평균 수명은 약 41년"이라고 밝혔다. 그는 흰개미설이 유력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흰개미설을 입증할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2013년 함부르크 대학의 환경학자인 노베르 저진스(Norbert Juergens)는 "나미브 사막의 페어리 서클 토양을 조사한 결과, 원이 생기는 초기 단계에서 항상 흰개미가 확인되었다"며 "페어리 서클은 흰개미가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흰개미설은 왜 원과 원 사이의 거리가 일정한지, 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페어리 서클 현상의 발생 메커니즘 규명..“식물 스스로 조직화한 패턴

이러한 가운데 케이프타운 대학의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Cramer)는 "극도로 건조한 기후에서 식물이 효율적으로 물을 얻기 위해 스스로 만든 패턴(자가정렬 식생 패턴)이 페어리 서클이다"라는 논제를 2013년에 발표했다.

크레이머는 구글어스(Google Earth) 위성사진과 그 토지의 토양 샘플을 조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든 결과 약 93%의 정확도로 페어리 서클 분포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호주에서 페어리 서클이 발견된 후인 2016년에는 독일, 호주, 이스라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호주 페어리 서클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 결과 페어리 서클이 발생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강우량의 변화’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결과는 크레이머의 ‘자가정렬 식생 패턴’ 설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어 연구팀은 2019년 2월 최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흰개미의 활동과 페어리 서클에 일정 정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흰개미가 페어리 서클을 만드는데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며 "극단적인 건조 기후 속에서 부족한 자원을 얻기 위한 식물간의 경쟁이 페어리 서클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의 괴팅겐 대학교 슈테판 교수는 "흰개미에 의한 식생의 변화는 페어리 서클 부근에서도 발생하지만 흰개미의 국소적 파괴가 페어리 서클을 만들 수는 없다. 결국 물-식물-토양의 관계가 페어리 서클의 발생 매커니즘"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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