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구매 시 더 싸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구매하실 거예요?”

[데일리포스트=김홍 기자] 지난해 사드 배치 이후 급격히 냉각된 한 중 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이 꼭 찾는 두 곳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필수 관광코스인 명동과 조금은 생소하지만 목동 로데오거리 화장품 유통단지입니다.

‘사드’라는 광풍이 불어 닥치기 전만 하더라도 내국인 보다 중국인들로 가득했던 명동의 빈자리는 동남아를 비롯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간혹 당국의 삼엄한 협박에도 발길을 찾는 중국인들을 볼 수 있지만 빙산의 일각 수준에 불과합니다.

사드 배치 결정 1년만에 명동거리를 찾아본 기자의 눈에 중국 관광객들이 들어섭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할 때 그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다싶지만 제법 운집해 있는 걸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선 가이드가 익숙하게 화장품 로드샵으로 중국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한어(漢語)를 토해내며 관광객들이 로드샵 내부를 점령합니다. 잠시 후 한보따리씩 화장품을 들고 나오는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금새 화색이 돌고 있습니다.



명동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한산하지만 한국 화장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있습니다. 바로 로데오 거리로 유명한 목동입니다. 명동 같은 쇼핑 열기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이곳은 관광목적의 중국인이 아닌 화장품 보따리 상인들이 주 활동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늦더위가 기승인 9월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지나가는 행인들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바삐 오가는 행인들 대다수가 로데오 거리로 향하는 듯 보였습니다. 목동 지하철역 2번 출구로 나간 후 10분 정도 걷게 되면 유통 도매 단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자는 이 중에서 제일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 화장품 도매 매장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각종 브랜드의 화장품이 가득 진열된 넓은 매장 이곳저곳에서 방문객과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물건 가격을 묻는 등 흥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 중국 관광객, 보따리장사 하러 왔다

매장 여기저기서 중국어와 한국어가 섞여 들렸습니다. 막 계산을 끝낸 방문객들이 박스 째 구매한 화장품들을 양 손 가득 들고 나갑니다. 명동의 큰 손 요우커들도 이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들이 매의 눈으로 물건을 고르는 모습에서는 프로 정신까지 느껴집니다.

이들이 바로 ‘따이꼬우(代?)’라 불리는 보따리 상인들입니다. 보따리상들은 주로 현지 소비자와 1대 1의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취급하는 화장품 종류를 눈여겨보면 현지의 최신 화장품 트렌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는 장위페이(?予菲·가명)씨는 “고객들과 소통할 때는 중국 메신저인 ‘웨이신’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들이 물건을 주문하면 EMS을 이용해 개별 배송을 해준다”면서 “보따리 장사는 무엇보다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몇 년 간 고정 고객과 꾸준한 소통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매대에는 유명 브랜드의 마스크팩과 화장품, 세안용품 등과 시중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브랜드의 제품들도 함께 진열돼있었습니다. 단품뿐만 아니라 몇 가지 종류로 구성된 세트 제품도 많이 보였습니다. 매장을 둘러본 결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가격이 명시돼있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매장 직원에게 요즘 각광받는 마스크팩 한 박스의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제품을 들고 사라집니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직원은 10개입 마스크팩 한 박스의 가격이 1만5000원이라고 말합니다.

▲ 단체 관광객 아니라도 좋다…계약만 하면 가격절충

이 마스크팩의 시중 가격은 한 박스에 2만원에 조금 못 미칩니다. 도매가도 소매가도 아닌 어정쩡한 가격에 기자는 100박스 정도 대량 구매를 할 시에 가격은 더 내려가냐고 묻자 직원은 대답을 꺼려합니다.

다만 물건을 지금 구매하기로 계약을 맺으면 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매장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도매가격이 외부인들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는다고 직원이 귀띔합니다.

이 직원은 “최소 30만원 어치 이상의 제품을 구매해야 회원 가입이 가능한데 이 회원증이 있어야 이곳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면서 “물건 가격을 물어볼 때도 회원증을 제시해야 수월한 문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원가입을 해야 구매가 가능한 것은 다른 도매 점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매장의 경우 일부 제품에 가격은 명시해놨지만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일정 기준 이상의 화장품 구매와 회원 가입을 요구했습니다.

보따리 상인들과 도매상이 공유하는 핵심 정보는 ‘공급률’입니다. 공급률은 바로 도매가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화장품 정가가 1000원이고 도매상이 제시하는 공급률이 40%라면 보따리 상인들은 400원에 물건을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매합니다.



일반적으로 마스크팩의 경우 30~35% 공급률로 형성돼 있고, 인기가 많고 희귀한 제품일수록 공급률이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보따리상들이 찾는 물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따라 공급률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해당 매장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기자가 방문한 날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는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제품과 LG생활건강의 ‘후’ 제품이 매대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명동과 목동을 번갈아 방문한다는 보따리상 리우쑤찡(?素京·가명)씨는 “지난해 말 이 매장을 방문했을 때는 분명 설화수와 후가 있었는데 오늘은 없다”면서 “이자녹스 제품도 찾고 있는데 없어서 일단 다른 것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매장 직원은 “원래 지난해까지 기초 화장품류 매대에 두 브랜드 제품을 진열해놨는데 올해 잠시 빼 놓은 것 뿐”이라면서 “곧 다시 들여놓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근 기초 (화장품류)에서는 아이오페와 라네즈 제품이 잘 팔린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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