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16일 현재 병원 입원자 11명을 포함한 부상자 62명과 1536명의 이재민이 불안에 떠는 등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진도 5.4였지만 진앙이 깊지 않아 흔들림은 더 크게 느껴졌다. 지난해 경주에 이은 포항 강진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전국수학능력시험을 23일로 연기했다.

이번 포항 지진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지난해 4월 구마모토 강진 등 일본에서 잇단 대형 지진이 한반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라는 대재앙이 발생한 일본은 지금도 지속적인 여진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진도 7.3의 구마모토 지진은 그 규모와 피해가 매우 컸다.

구마모토 지진 이후 1년 7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건물과 인프라 복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진으로 인한 직접 사망이 아닌 ‘재해 관련 사망’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재해 관련 사망자수’는 192명으로 직접 사망자수 61명을 크게 웃돌고 있다.



◆ 쿠마모토 지진 사망자 253명으로 늘어

NHK는 지난 14일 구마모토 지역의 70대와 80대 여성이 새롭게 재해 관련 사망으로 인정돼 사망자는 쿠마모토현과 오이타현을 합쳐 총 253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구마모토현은 지금까지 피해자 유족을 대상으로 재해사망 조위금 신청을 받고 있으며 피난 생활 당시 건강악화 등으로 사망한 경우 재해 관련 사망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사위원회에서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4월 사망한 70대와 80대 여성은 지진 충격과 여진에 대한 불안 스트레스, 피난생활이라는 환경 변화에 따른 컨디션 악화가 사망으로 이어졌다며 새롭게 재해 관련 사망으로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구마모토 지진으로 사망한 사람은 쿠마모토현 250명, 오이타현 3명으로 총 253명이며 재해 관련 사망자는 총 192명으로 늘었다.

재해 관련 사망자 192명을 조사한 결과 사망원인 1위는 피난소와 자동차에서의 숙박 등 피난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73명), 2위는 병원의 지진피해로 치료 지속 불가능/의료기관의 기능저하(43명)였다.



◆ 병원 측의 안일한 대응으로 어린 생명까지 희생

일본 언론들은 병원의 ‘업무연속성 계획(Business Continuity Plan, 이하 BCP)’의 부재가 재해 관련 사망자를 크게 늘렸다고 지적한다. BCP는 재난과 재해로 인한 업무중단 상황이 발생할 때 해당 업무를 복구하고 재개하기 위한 정책을 의미한다.

후생노동성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해 발생시 치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병원측에 BCP 정비를 요구했지만 지난해 지진 당시 구마모토현 병원 가운데 90% 이상이 BCP를 정비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마모토 시민병원은 지난해 지진 당시 300명 이상의 입원환자 전체가 대피했다. 저수조에 피해를 입어 물이 끊기면서 의료 행위를 계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재해시 우물물을 저수조에 모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저수조 자체가 피해를 입는 경우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다.

당시 병원에 입원한 네 살 미야자키 카린은 심장병이 악화돼 중환자실에서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으나 병원의 지진 피해로 치료가 불가능해 100km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었다. 타 병원으로 옮긴지 불과 5일 후 아이는 사망했고 이송 부담으로 인한 재해 관련 사망으로 인정받았다.

카린의 모친 미야자키 사쿠라씨는 "지금까지 본적이 없을 정도로 전신에 부종이 심했다.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구마모토 시민병원의 타카다 아키라 원장은 "병원에 머물기를 원하는 상황에서 이송을 결정했기 때문에 매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 입원환자가 느끼는 이송 부담이 건강에 악영향

구마모토 지진으로 구마모토현의 15개에 달하는 병원이 붕괴위험과 라이프라인 두절을 이유로 총 1600명의 입원환자에게 타 병원으로 이동하거나 퇴원하라고 강요했다. 병원 측은 지진피해 이후의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었고 이는 입원환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동구마모토 병원은 라이프라인이 끊겨 총 46명의 입원환자 전원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당초 재해가 발생하면 지역 핵심병원인 구마모토 시민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계획이었지만 구마모토 시민병원역시 피해를 입으면서 어떤 대책도 강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원환자 대부분이 노쇠한 노인이었지만 건물 붕괴 우려로 밖으로 대피했고 행선지를 정하지 못한 환자는 새벽까지 밖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임시 수용시설이었던 구마모토 시내의 병원조차 직원과 물자가 부족해 충분한 치료를 지원할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병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고 구급차도 부족해 자위대 차량에 불편한 상태로 장시간 이동해야 했다.



수용 병원 가운데 하나였던 쿠마모토현 쿠마군 타라기 공립병원의 간호부장은 당시 현장에 대해 "와병 상태의 자유롭게 손발도 움직일 수없는 환자들이 같은 자세로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였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동구마모토 병원에서 이송된 46명 가운데 17명이 사망했으며 적어도 5명이 재해 관련 사망으로 인정받았다. 동구마모토 병원의 나가타 소이치 원장은 "환자에 대한 책임측면에서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병원 피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쿠마모토 지진을 반면교사로...대책마련에 분주한 일본

구마모토 지진 이전에 실시된 조사에서 병원이 피해를 입더라도 의료를 계속할 수 있는 BCP를 마련한 병원은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했다. 대책 미비가 실제 많은 희생자로 이어지면서 올해 3월 일본 후생노동성은 재해 거점 병원의 BCP 정비를 의무화했다.

토치기현 재해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아시카 적십자병원’은 총 공사비 약 200억엔을 투자해 재해 설비를 강화했다. 정전이 발생하더라도 5일간 통상적인 치료가 가능한 발전기와 단수시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고 저수탱크에는 흔들림에 강한 내진 기술을 도입했다.



코마츠모토 사토루 원장은 "인프라 설비를 갖추고 처음으로 (재해시에도) 의료가 가능해졌다. BCP는 앞으로 병원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해거점 병원의 경우 BCP 대책이 의무화됐지만 사실 소형 병원은 재해에 대한 대비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도쿄에서는 지진 등에 대비해 병원 간 네트워크 구축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하면 전용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수집해 250여개의 참여 의료기관의 피해 상황과 환자 수용 가능 여부 등을 전송한다. 해당 내용을 받은 사무국이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의 이송병원 등을 조정한다. 가령 단수 등의 영향을 받기 쉬운 투석 환자가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병원의 규모, 역할, 자금 등이 달라 각 병원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아직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먼저 마친 병원에서 연수를 진행하는 등 병원 간 연계도 고려하고 있다.



1978년 국내 지진 관측 이후 역대 최대와 두 번째 규모의 지진이 1년 간격으로 발생하면서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진과 연이은 여진 공포 속에서 국내 병의원 역시 지진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자제품 파손과 벽면 균열은 물론 진동으로 조제기가 넘어져 병원 직원이 부상을 입는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피해자와 환자에게 병원은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관련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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