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북한發 안보위기에 힘입은 아베 신조(安部晋三) 일본 총리가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 의지를 밝히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일본 니케이등 외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5일 자민당 임시 간부회의에서 오는 28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중의원 해산 후 총선을 실시하는 안을 공식 발표키로 했다고 전했다. 아베총리의 이 같은 강공은 최근 지지율 상승이라는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최근 잇따른 ‘북풍’을 타고 다시 50%를 넘어섰다. 18일 극우성향 산케이신문 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50.3%로 전달 대비 6.5% 오르며 4개월 만에 50%선을 회복했다.

북핵 위기 국면에서 발 빠른 대응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북제재를 선도한 데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도발은 지지율 30% 밑으로 떨어지면서 위기에 몰린 아베 내각 지지율을 한껏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북한이 아베 정권을 살린 셈이다. 한 자민당 의원은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라고까지 표현했다. 따라서 조기 총선은 집권 자민당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 중의원 조기 해산 공식 표명...내달 22일 총선 가능성 높아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총리는 의원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중의원 임기는 원래대로라면 내년 12월까지로 당초 아베 총리는 내년 8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세 번째 연임을 확정 지은 뒤 중의원 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케학원 스캔들 영향으로 지지율이 급락하고 이어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도 참패를 당하자 조기총선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이다. 일본 정계는 차기 중의원 선거가 내달 10일 공시 후 22일에 투개표가 치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안보 위기 상황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선거를 치르는 게 자신의 입장에서 득이 된다는 판단과 야당이 진용을 갖추기 전에 선거를 치루면 정치권 내 일정세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란 계산 하에 조기총선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제1야당 민진당 지지율은 4%대로 극히 낮은 수준이고 최근 급부상한 보수성향 정치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의 신당 창당도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어 영향력을 강화할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의도도 내포돼있다.

야권에서는 아베 정권이 사학스캔들에 대한 국회추궁이 예상되는 가운데 임시국회 시작 전에 중의원 해산을 결정한 꼼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3당인 민진·자유·공산당은 즉각 비판에 나서는 한편 중의원 조기 해산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분주해진 모습이다. 제1야당 민진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대표는 “각종 의혹 추궁을 피하기 위한 해산”이라고 비판했다. 공산당 역시 대의명분 없는 해산이라며 비난했다.

◆ 북한문제와 소비세율 복지 활용 등 해산 명목 급조

아베 총리는 조기총선을 위해 소비세 증세로 인한 세수 증가분의 사용처 수정과 북한 대응 등에 대해 국민들의 신뢰를 묻겠다는 명분을 급조했다.

25일 아베 총리는 "정책 변경으로 국민에게 신임을 물을 것"이라며 중의원 해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북한 정세가 향후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 확실한 대응을 위해 국민에게 신임을 물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노타로(河野太?) 외상 역시 이날 “자민과 공명 양당이 정권을 쥘 것인지, 보안관련법에 반대하고 있는 야당에게 위기 상황 속에서 정권을 맡길 것인지를 묻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그간 두 차례 지연시켰던 소비세를 2019년 10월 단행해 현 8%에서 10%로 인상하고 이로 인한 세수인상분을 교육 무상화 및 사회보장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국가 부채 해결에 사용하려던 인상분을 복지재원으로 돌린 것이다.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은 육아 및 교육 관련 예산을 늘려 젊은 층 지지를 늘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가 채무 변제 부분을 줄여 재정건전성이 한층 악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세 인상은 당초 2019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2014년과 2016년 총선 당시 아베총리가 이를 연기한 바 있다.

아베 총리가 소비세율과 북한 문제를 해산의 공식적인 명분으로 내세운 가운데 아직 지지기반을 안정화시키지 못한 야권은 곤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세수를 사회보장에 활용한다는 명분 자체는 제1야당 민진당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가 먼저 꺼낸 이야기고 다른 야당인 공산당은 증세 자체에 반대해 왔다.

노선이 다른 만큼 야당 연합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점쳐졌으나 급박한 일정 탓에 민진당과 자유당, 공산당, 사민당 등의 후보 단일화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는 자민당·공명당의 연립여당, 제1야당 민진당을 비롯한 범야권, 희망의 당의 3파전이 될 공산이 높다. 의원 영입에 주력해온 고이케 신당은 '희망의 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26일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 아베의 개헌 야욕...자민당 총선 공약에 개헌 명기

아베의 속내는 야당의 진영이 공고해지기 전에 총선을 치러 3연임 내각총리에 오르고 그 후 자위대의 헌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헌법 개정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월에도 평화헌법 규정인 헌법 9조 가운데 전쟁·무력행사 포기를 정한 1항, 전력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2항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위대의 근거를 규정하는 3항, '자위대 명기(自衛隊明記)안’을 추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의 개헌 추진 야욕은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를 계기로 다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24일 NHK 토론프로그램에서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대행은 “(자민당 개헌안)을 연내에 정리하고 내년 정기국회 발의를 목표로 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

총리가 제기한 자위대 명기안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유력 '포스트 아베' 주자 가운데 한명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과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역시 개헌안 공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내에는 표심을 잡지 못하는 헌법 개정을 쟁점화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신중파들도 있다.



아사히신문 등 현지 매체는 기습적인 중의원 선거가 아베의 정권 유지와 헌법 개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중의원 475석중 321석(자민당 286+공명당 35)을 보유하고 있어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2(317석)를 조금 웃돌지만 당내 계파 갈등으로 개헌은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아베의 밀어붙이기가 가능한 것은 ‘북풍(北風)’에 기인한 높은 지지율이다. 25일 니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은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에 투표하겠다는 의향이 44%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발판삼아 아베의 개헌 야욕은 이미 하나둘 구체화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자민당이 중의원 총선공약에 평화헌법 규정인 헌법 9조에 자위대 존재 근거를 명기하는 개헌안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으며 이미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가 공약 작성 작업에 도입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최근 지지율을 바탕으로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총선에서 개헌을 명기한 후 자신의 평생 숙원이라 할 수 있는 헌법 개정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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