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운영 방식과 수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해당 언론사와 기자 고소는 좋은 방법 아니다


?-진상 신속히 솔직하게 밝히는 게 최상의 해법





정치판이 시끄러워지고 국민들을 짜증과 한숨 속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또 터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자 실세중 실세로 소문난 정윤회씨의 인사개입 의혹 보도, 이같은 내용의 문건을 포함한 청와대 비밀문서의 대량유출입니다.





세계일보는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가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과 정기적으로 만나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특종보도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른 매체들이 정윤회씨의 신상, 대통령 동생 박지만 EG회장과의 권력암투, 청와대 대외비 문건 대량유출 등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연말정국은 ‘정윤회 정국'으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여론의 관심도 이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특종을 한 세계일보와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지, 아니면 추운 날씨와경기침체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판에 권력의 추문(醜聞)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스산하게 만든데 대해 불평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청와대의 고소로 검찰에 불려나가고 법정에 서게 돼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위로를 해야 하는 것일수도 있겠네요.




?청와대가 신문사를 고소하고, 정윤회씨측도 소설이라며 부인하고 있어 사안의 실체는 검찰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청와대 공직비서관실이 작성한 정윤회씨 동향보고 문서.



그러나 보도내용을 사실(Fact)로 믿게할만한 여러 정황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서이고 보고라인을 통해 김기춘 실장에게 까지 보고됐다는 점입니다.





정씨의 ‘김실장 경질 분위기 조성'지시-증권가 찌라시와 정치권의 김실장 교체설-공직비서관실의 정씨 동향보고-김실장에 대한 정씨 동향 보고 등으로 이어지는 시간상의 사건 전개 순서도 범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 핵심부의 국정운영 방식과 능력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취임이후 지금까지 여러 건의 인사실패를 보면서 점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왔지만 이번 일은 완전히 그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제 실망을 넘어 포기해야 할 지경이 되겠지요.





이 사건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대통령 비선(秘線)라인의 국정농단입니다.





비선라인이 실세로 꼽혔던 대통령 비서실장 축출 작업을 할 정도로 인사에 깊숙히 개입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선조직이 칼을 휘두르면 공조직들은 눈치를 보고 숨을 죽입니다. 국정이 효율적으로 돌아갈리 없습니다. 비선조직의 국정농단은 국기문란 행위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 특히 여권에서조차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만큼 이상한 인사가 많이 이뤄진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문건에는 십상시(十常侍)라는 말도 등장합니다. 십상시가 누굽니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환관들입니다. 후한(後漢)말 어린 황제를 둘러싸고 국사를 마음대로 주무른 내시 10명을 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비서관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지금이 어느 때이고 우리의 수준이 그 정도인가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말이 돌고 있다는 자체로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청와대 대외비 문건의 대량유출입니다. 청와대는 권부의 핵심입니다. 대통령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국가안보와 위신을 위해서라도 문건, 특히 비밀문건은 아주 엄격히 관리돼야 하고 사후처리도 치밀해야 합니다.





그런데 라면박스 1~2개 분량의 문건이 새나간 것으로 알려지고있습니다. 게다가 문서가 유출된지 몇 달이 지나도록 누가 어떤 경로로 무슨 이유로 빼돌렸는지 밝혀내지 못햇고 유출문건 수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정부기관의 모범이 돼야할 청와대의 근무기강과 업무처리 능력이 이런대서야 말이 됩니까?





세 번째는 언론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입니다. 청와대는 보도가 나가자 “증권가 찌라시에 나오는 풍문을 취합한 동향보고 수준의 문건으로 당시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됐으나 확인절차를 거쳐 근거없는 내용이라고 판단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서관, 행정관 등 8명 이름으로 세계일보 사장과 편집국장, 해당기자 등 6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진상을 밝혀 파장이 확산되지 않도록 대응을 한 것인데 이건 하책 가운데서도 최하책입니다. 그런다고 이 사건이 그대로 묻힐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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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고소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근거로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 문건은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청와대에서 작성된 공식 문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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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증권가 찌라시의 ‘카더라'를 바탕으로 한게 아니라 청와대의 행정관이 작성한 문건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런 문서가 있고 그 내용이 보고라인을 통해 비서실장에게까지 올라갔는데 그게 어떻게 허위사실 보도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그게 증권가의 찌라시 내용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면 청와대의 정보수집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국정 운용능력이 허위사실을 취합한 문건을 근거로 할만큼 형편없다는 반증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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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는 사태수습은 커녕 오히려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일련의 보도로 벌써부터 정윤회씨를 세월호 침고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루머와 연관시켜 보는 시각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검찰이 수사한들 그 결과를 믿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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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최선의 대응은 신속하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히고 책임질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시간은 결코 청와대의 편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나머지 임기 3년을 레임덕 속에서 허덕일 우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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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해명처럼 정윤회씨 관련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라 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사실일 경우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당장은 타격이 있겠지만 그게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길입니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則死 必死則生)이라고 했습니다. 당장의 어려움을 견디기 어려워 상황을 외면하며 피하려고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억측과 불신은 더 깊어지고 거기에 발목이 잡혀 국정을 펴나가기가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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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정공법으로 나가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객관적이고 공정한 실체파악을 위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자청할 필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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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솔직한 사람, 잘못을 했더라도 반성하고 변화하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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