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영웅들의 일상’

[데일리포스트=송협 선임기자] “삶의 중심이면서 그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무심코 지나쳐버린 무수한 사람들이 ‘영웅’이었음을 한 폭의 그림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영웅’은 단순히 ‘이상(理想)’이 아니었습니다. 고개만 살짝 돌려만 봐도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 안에 존재한 내 자신이었습니다.”?(직장인 송이화)

내 오랜 기억 속에 잔존한 ‘영웅’은 단언컨대 ‘슈퍼맨’과 ‘원더우먼’입니다. 지금은 너무도 작아져 버린 동네 골목에서 목 뒤로 넘긴 붉은 보자기를 손으로 날리며 악당들을 제압했던 오래 전 소년은 중년이 된 지금까지 슈퍼맨을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지구를 빛의 속도로 날아오르는 슈퍼맨, 악당의 총알을 팔찌로 막아내며 번개처럼 악당을 쓰러뜨리던 원더우먼을 우리는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머나먼 우주 혹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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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흑백 TV 속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서 번개처럼 옷을 바꿔입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슈퍼맨, 그 슈퍼맨이라는 영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불의로 점철된 현시대는 진정한 ‘영웅’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의 공백, 가끔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작금의 답답한 현실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영웅을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인가요?

모순된 사회적 통념을 깨고 한 올의 껍데기도 없이 현실적 ‘영웅’을 고스란히 묘사한 젊은 화가 이유치의 작품 ‘영웅들의 일상’을 접하기 전만 하더라도 유년시절의 기억 슈퍼맨과 같은 영웅은 결코 없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 아니 그저 SF 영화나 TV 만화 속 주인공만이 영웅이 아니고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은 바로 나의 삶,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너무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선 화가 이유치, 그녀가 이 막막한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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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유치는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영웅이고 슈퍼맨일 것이며 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웅이라는 자격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굳이 유년시절 기억으로 각인된 상상 속의 영웅 슈퍼맨을 찾지 않아도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그 삶을 존중하는 사람들, 그리고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차곡차곡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자신이 바로 시대적 ‘영웅’이라는게 화가 이유치의 해석 아닐까요?

화가 이유치 그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현 시대의 슈퍼맨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는 ‘가장(家長)’이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혹독한 무게를 짊어진 존재이며 동시에 영화 속 멋진 ‘영웅’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족, 그 엄청난 무게를 지탱시켜주기 위해 정글과 같은 세상과 싸워야 하는 아버지는 지극히 영웅임에 분명하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누군가에게는 영웅이며 그 ‘영웅’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그 삶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화가 이유치의 작품 속 인물들의 당당한 포즈와 작업복, 낡은 옷 사이로 비춰지는 영웅의 모습들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줄기 희망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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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지극히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가장(家長)’으로서 당연시 됐던 아버지의 역할, 우린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버린 ‘일상 속의 영웅’들을 현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나’와 우리들은 이제 조금은 억지를 꿰어 맞춰 ‘히어로…영웅’으로 날개를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녀의 작품 속 ‘영웅’들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느낌’도 있습니다. 힘들고 위험 도사린 현장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아버지는 사실 ‘슈퍼맨’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도록 가사를 돌보는 주름 깊은 어머니는 ‘원더우먼’이며, 무한경쟁 속에서 쉴새없는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의 구겨진 셔츠 속 주인공은 ‘배트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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