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언론 때리는 광고주협회…“형평성 없다” 논란

[데일리포스트=황선영 기자] 대한민국 언론을 감시하고 언론을 평가하는 거대 단체가 있습니다. 도가 지나친 언론의 행위를 관리·감독하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도 아닌 바로 기업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한국광고주협회입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건설, 포스코, 대한항공 등 총 203개 자본기업들이 ‘광고주의 권리 찾기’를 위해 설립한 이 단체는 앞서 언급했던 신문윤리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보다 더 강력하고 무서운 권력을 바탕으로 언론사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단체는 그간 기업을 운영하는 자신들을 상대로 반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 협찬 등을 뜯어 왔다며 일부 언론사들을 ‘사이비 언론’으로 지목하고 자체 평가를 통해 ‘나쁜 언론’을 공표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협회는 ‘나쁜 언론’ 프레임을 강조하며 거대 공룡 언론사는 회피하면서도 힘없는 군소 언론에 칼날을 대는 이중적 잣대가 심화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이겠지만 실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군소 언론사들을 자신들이 스스로 평가해 제거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실제 지난 1일 협회가 한국리서치를 통해 발표한 ‘2015 유사언론 피해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100개 기업은 총 192개사를 ‘유사(사이비)언론’ 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협회의 이 같은 선전전에 ‘조·중·동’과 같은 거대 메이저 언론은 제외돼 평가의 기준과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날선 비난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한국리서치의 유사언론 피해실태 조사 이후 메트로 신문을 필두로 20곳의 언론사가 정보지(일명 찌라시)를 타고 ‘나쁜 언론’에 선정돼 각 언론사와 기업 곳곳으로 뿌려졌습니다.

협회의 나쁜 언론 선정하기 행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1년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이라는 미명 아래 국내 5개 언론사의 실명을 거론해 한 차례 파문이 일었습니다.

당시에도 조선일보 계열 경제지가 리스트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어느 순간 제외됐고 이 매체의 나쁜 언론 탈피는 함께 거론 됐던 중견 매체까지 함께 리스트에서 빠져나가는 반사이익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일각에서는 이 매체가 이번 발표에서도 실명 거론을 피해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기사로 조지고 광고로 바꿔먹는’ 행태는 제재를 받아 마땅합니다. ‘삐뚤어진 저널리즘’은 올바른 언론시장,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해만 될 뿐입니다. 그러나 광고주들이 언론 감시 역할을 자청하며 나섰다는 것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기사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혹은 다른 법적 수단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나쁜 언론에 대한 판단을 광고주협회가 주도하는 것은 이치를 벗어난 행위며 월권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메이저와 마이너를 철저하게 나눠 판단하는 광고주협회의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메이저 언론은 ‘양아치 짓’을 전혀 하지 않고 중소언론들 대부분이 만행을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분법에 동의할 업계 종사자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힘있는 메이저에서 요구하면 당연한 ‘협찬’이 되는 것이고 힘없는 마이너에서 요청하면 ‘강요’ 혹은 ‘쌩떼’로 변하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광고주협회에서 유사언론 보도자료를 내놓기가 무섭게 일부 메이저 언론사에서 받아썼다는 점, 그리고 최근 이들 매체에서 사이비언론관련 기사가 출고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시기가 너무 적절합니다.

한국 언론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어디서 파생되고 있는지는 망각한 채 서로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광고주협회의 행동은 나쁜언론 프레임으로 ‘까칠한’ 언론사들을 제거한 후 언론시장 질서를 입맛에 맞게 재편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론직필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중소매체들은 그들이 사이비라고 낙인찍는 순서대로 나가떨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전경련이라는 대표 이익집단 산하에 있는 광고주협회가 특정 언론을 사이비로 낙인찍는 행위 자체가 공갈협박”이라며 “이는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제동을 걸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 사무처장은 “불편한 기사에 대해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버젓이 있는데도 이같은 자료를 돌리는 행위는 특정 언론 망신주기”라고 덧붙였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관계자는 “광고주협회가 나서는 것은 일부 사이비 매체를 제재한다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의 비판기능을 위축할 소지가 분명히 있다”면서 “이 문제는 단발적인 이슈거리가 아니라 포털과의 연관성 등 장기적으로 심도 있게 봐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한국광고주협회 로고와 각 매체에서 보도된 나쁜언론 헤드라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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