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칭다오 김혜경 기자]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이웃나라 중국. 중국인 관광객들 또한 세계 각국에서 ‘큰 손’으로 대접받으며 막강한 소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발적인 성장이나 만큼 중국은 빈부격차가 큰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명동에서 쇼핑에 몰두한 요우커를 바라보면 이같은 사실이 쉽사리 체감되지 않지만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발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곳을 발견하곤 합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이 아닌 해안 도시에서도 빈부의 흔적은 도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자가 지난 설 연휴에 방문한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는 과거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기 때문에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도시 전역에 진하게 묻어났습니다.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이곳은 해안가만 둘러보면 마치 풍요로운 휴양 도시처럼 보입니다.


보통 칭다오의 과거를 보려면 칭다오 기차역과 해안가에 위치한 공원들이 중심이 된 ‘구시가지’를 산책하고, 칭다오의 현재를 보고 싶으면 호텔, 백화점 등 현대적인 건물들이 밀집돼 있는 ‘신시가지’를 둘러보곤 합니다.


최근 칭다오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바로 ‘리춘(李村)시장’입니다. 이곳은 공항과 구·신시가지 중간에 위치해있어 시간이 빠듯하다면 방문하기가 조금은 고민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요리전문가 백종원씨가 칭다오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TV프로그램에서 소개를 한 뒤부터입니다.


기자도 호기심이 생겨 리춘 시장을 살펴보기 위해 호텔 직원에게 교통편을 문의했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직원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이 직원은 “더럽고 볼 것 없는 그 곳에 도대체 왜 가려고 하는 것이냐”면서 “차라리 그 근처 쇼핑몰을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던 리춘시장은 다리 밑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 방문한 이곳에서도 빨간 종이에 ‘복(福)’자를 적어 놓고 춘절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중 기자는 숙소가 위치한 해변 지역보다 이곳이 유난히 더 춥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자와 목도리, 두툼한 패딩점퍼로 중무장을 한 기자와는 달리 이곳 상인들은 얇은 겉옷이나 스웨터만을 입은 채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관광 열기가 느껴지는 중국의 여타 야시장과는 달리 리춘시장은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자가 상상했던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관광객들의 여유로운 지갑대신 이곳에서는 현지인들의 얇은 지갑만이 눈앞에 오고갔습니다.


한 돼지고기 상점에서 주인 할머니와 현지인 아주머니가 칭다오 사투리로 흥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돼지 뒷 다리살 500g을 두고 3분의 1만을 사겠다는 손님과 3분의 2는 사야 판매하겠다는 주인 간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중국 위안화로 2원, 한화로 500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입니다. 아주머니는 청경채까지 사려면 고기를 3분의 1만 사야 한다고 말합니다.


식재료부터 짝퉁 제품, 값싼 스쿠터까지 팔던 리춘시장은 그들의 생존본능 본색이 느껴지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다리 위에서 봤을 때는 그저 전통시장인줄 알았는데 그들의 일상을 엿보고 나니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지’로만 여기기에는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장을 빠져나온 기자는 문득 호텔 직원이 말한 쇼핑몰이 떠올랐습니다. 도보 10분이라는 현지인의 말에 따라 그곳으로 향하던 중 시장에서 마주쳤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옷차림의 행인들이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죽 부츠를 신고 고급 모피까지 두른 중년 여성을 따라 걷다보니 몇 개의 쇼핑몰이 몰려있는 번화가가 눈에 보였습니다.


칭다오에서 리춘 시장과 번화가의 이같은 공존은 기묘했습니다. 도심 해변가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빈곤의 이미지가 근처 최신식 쇼핑몰에 대비되어 더욱 뚜렷해 보였습니다. 이 지역의 풍경은 마치 한국에서 부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판자촌 ‘구룡마을’의 공존과 비슷해보였습니다. ‘유럽풍의 부유한 항구도시’라는 칭다오의 이미지가 이방인의 눈에서 벗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리춘 시장의 상인들이 이날 장사를 접고 정산을 위해 꼬깃꼬깃한 지폐를 셀 무렵, 신시가지에 위치한 한 5성급 호텔의 뷔페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명절을 맞이해 평소보다 비싼 가격인 한화 약 7만원을 지불해야 밥을 먹을 수 있음에도 대기자 명단에조차 이름이 빼곡하게 차 있었습니다.


<사진=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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